영화 카트가 실화라는 사실은 모두 아실 겁니다.
오늘 카트를 보며 전 슬프지 않았습니다.
분노했습니다.
파업과 노동조합이라는 이 두 단어.
두 단어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언제나 곱지 않습니다.
병원에서 파업을 하면
환자를 볼모로한 파업이라 하고
물류기사 분들이 파업을 하면
유통대란을 볼모로한 파업이라 하며
비정규직이 파업을 하면
노력안하고 노력한 사람들을
따라하려한다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못생각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은 우리 부모님일 수 있고
우리 친구 일수도 있고
혹은 우리 자신일 수 있습니다.
설사 지금 내가 정규직이라도
언제든 비정규직이라는 자리로
가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기에.
카트를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당시 실제로 파업을 하며
아픔을 당하셨을 분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지금도 부당함과 싸우고 있을
차별을 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혹여나 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전 비정규직이 아닙니다.
비정규직이었던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부당함과 싸워봤습니다.
영화를 보며 훌쩍거리는 사람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노하는 사람은 얼마 없더군요.
'왜 이 영화를 보며 분노하지 않는가.'
묻고 싶었습니다.
'저 상황이 부당하다 느끼지만
분노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공권력은 약자가 아닌
자본가의 손을 들어주는가.'
답은 알고 있지만
항상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빨갱이로 낙인찍히기 때문입니다.
부당함을 부당하다 말하면
더 부당한 대우를 받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자를
사회가, 나라가 보호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당함을 부당하다 말하는 자를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당시
저에게 인사노무를 가르쳐주시던 교수님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오블리스 노블리제'
하지만 교수님이 전해주시는
'오블리스 노블리제'는
그 뜻이 조금 달랐습니다.
조금 더 가진 사람이
조금 덜 가진 사람에게
배풀줄 알아야 한다.
였습니다.
그 배품은 금전이 아니라
따뜻한 손길이라고.
카트의 실제 주인공들이
진짜 필요했던건
사회적 관심과 손길이었을 겁니다.
영화를 보며
'아, 슬픈영화였어.'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건 예고편도 본편도 아닌
진실입니다.
왜 비정규직이라는 형태가 생겼는지
그리고 왜 그분들이 파업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는지
그것을 고민해야할 때입니다.
사회문제에 눈감지 않는 것이
용기입니다.
우리 사회가 필요한 건
"노예근성"이 아닙니다.
야근을 당연시하는 문화가 아닙니다.
나와 다른사람을 차등 대우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아닙니다.
"정당한 노동과 정당한 대가"
사회와 국가 해주지 않는
노동에 대한 교육을.
우리가 우리 다음세대에게
전해주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Entertainment > Movie Pos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억의 만화가 영화로! 닌자 터틀 (0) | 2014.11.24 |
---|---|
어둠을 선택한 영웅 :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 (0) | 2014.11.21 |
신화가 아닌 진짜 영웅으로 허큘리스 (0) | 2014.11.18 |
[개봉예정작 미리보기] 헝거게임3 : 모킹제이 (0) | 2014.11.05 |
서유리 주연 위층여자 리뷰(서유리노출수위) (0) | 2014.10.31 |
댓글